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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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蘅堂畵意帖(형당화의첩)

  • 자료번호

    문36148
  • 저자명

    유재소(劉在韶,1829~1911) 그림/김정희(金正喜) 외 제발(題跋)ㆍ제시(題詩)
  • 발행년도

    1849년~1893년
  • 크기(cm)

    세로 32.0, 가로 23.0 cm(유재소 그림 크기: 세로 24.7, 가로 41.0 cm)
  • 개요

    추사 김정희의 제자 형당(蘅堂) 유재소(劉在韶, 1829~1911)가 21세에 「추림소산도(秋林蕭散圖)」를 그려 희원(希園) 이한철(李漢喆,1808~미상)에게 드렸는데, 이 그림을 본 고람(古藍) 전기(田琦), 김정희(金正喜), 조희룡(趙熙龍), 유최진(柳最鎭, 1791~미상), 유숙(劉淑), 김수철(金秀哲) 등 25인이 쓴 평(評)을 모아 함께 장첩(裝帖)한 서화첩이다. 본 자료는 일본에 있던 자료로 일부가 사진으로만 국내에 알려졌는데 국내로 환수한 것이다. 추사 김정희 유파의 서화 연구에 매주 중요한 자료이다.
  • 키워드

    김정희, 유재소, 조희룡, 이한철, 김수철, 김석준, 오경석, 서상우

소개

[기본정보]

절첩본(11절)

 

[목차 및 내용]

연번

저작자

인문

내용

1

劉在韶

【己丑▣▣▣▣▣▣】

【黃花復朱實,食之壽命長】

【▣▣▣▣】【▣▣▣▣】【小泉】

기유년(1849) 단오(端午) 큰 빗속에 학석(鶴石, 유재소의 호)이 그려 희원(希園)형에게 드린다.[己酉端陽大雨中鶴石寫呈希園兄]

2

田琦

【▣▣】【田琦】【古藍】

유재소가 본래 그림을 모르는데 지난 여름에 예찬(倪瓚)의 시를 읽고 좋아하였고, 그 그림까지 좋아하였다. 꿈에서까지 찾다가 깨달음이 있어 그렸다는 내용이다.

3

金正喜

【龍丁】

유재소의 글씨는 많이 봤지만 그림은 처음 봤는데, 예찬을 넘어 황공망의 문경(門徑)에 들었다며 극찬하는 내용이다.

4

金九五,

朴癸詹

【金九五印】【癸詹】

김정희의 노홍루(老紅樓)에서 함께 감상한다는 배관기이다.

5

趙熙龍

【趙熙龍印】【又峰】

‘오악초정(五岳初程)’이란 말을 함부로 못하겠다는 말과 함께 유재소가 21세에 그린 첫 작품임을 말하고 있다.

6

柳最鎭

【墨緣】【某叟】

글씨는 아들 유학영에게 쓰게 했다.

7

柳學永

【愚溪審定】

유학영의 배관기이다.

8

金秀哲

【▣▣】【▣▣】

북산(北山) 김수철(金秀哲)의 평이다. 화가들이 도달하고 싶은 경지를 첫 작품에 이룬 작품이라며 경탄하는 내용이다.

9

劉淑

【漢陽劉淑】

자신의 벼루를 태워버리고 싶다며 극찬하는 내용이다.

10

南應耆

【眞山】【應耆】

배관기

11

石南生

【▣▣】【▣▣】

5언 절구로 평을 썼다.

12

松南生

【詩畫新養】【金石交】

5언 절구로 평을 썼다.

13

柳湘

【柳湘印】

1849년 무더위 속에서 고람의 약창(葯窓)에서 배관했다는 내용이다.

14

玄錡

【玄錡】

7언 절구로 평을 썼다.

15

姜鳳周

【己酉▣】

5언 절구 1수 및 별도의 평을 썼다.

16

金奭準

【蕅船同生日】【金】【奭準】

5언시로 평을 썼다.

17

吳慶錫

【亦梅】

죽은 전기(田琦)를 그리워하며 1870년에 쓴 기록이다.

18

崔吉淳

5언시 2수와 함께 별도의 평을 썼다.

19

丁學敎

【香壽▣題】【平生有三願】

‘화경루주인(化境樓主人)’이라 관지하였다.

20

蘿山生

【▣弟子】

21

崔亨遠

【▣▣】

7언시

22

澹園散人

【方外逍遙】

23

孫瀅銖

【孫瀅銖章】【華山】

24

石隱生

【▣▣】

7언시

25

雨荷

【▣▣】

26

徐相雨

【徐相雨印】【秋堂】

1893년에 쓴 7언시 2수로 평을 썼다.

 

[자료의 특성 및 가치]

이 서화첩의 표제는 ‘형당화의(蘅堂畫意)’이다. 형당(蘅堂)은 유재소의 호(號)다. 표제 글씨는 붓으로 쓴 게 아니라, 손가락으로 쓴 지두서(指頭書)로 보인다. 게다가 다른 곳에 있던 글씨를 옮겨와 붙인 듯한데, 본래 장정된 서화첩이 훼손되자 새롭게 개장(改裝)한 것으로 보인다.

총 11절(折)의 절첩장(折帖裝)이다. 첫 면에 유재소의 그림이 있다. 그림 우측 상단에는 ‘추림소산(秋林蕭散)’이란 예서(隸書)의 화제(畫題)가 있고, 좌측 하단에는 ‘1849년 단오(端午,5월 5일)에 그려 이한철에게 드린다.’는 유재소의 제지(題識)가 있다. 이어서 고람(古藍) 전기(田琦, 1825~1854)의 감상평이 있다. 그림을 그린 날에 쓴 것으로, 희원 이한철(李漢喆, 1808~미상)에게 보장(寶藏)하라는 당부를 하고 있다. 이 해 6월에 김정희는 소치(小痴) 허련(許鍊), 전기(田琦)를 비롯한 14명의 서화가를 회루(繪壘), 묵진(墨陣)으로 나누고 이들의 작품에 품평을 해줬는데, 이 품평을 정리하여 기록한 것이 《예림갑을록(藝林甲乙錄)》이다. 이 그림은 그 즈음에 그린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다음 면에 김정희의 제지가 있고, 옆에는 노홍루(老紅樓)에서 쓴 김구오(金九五)와 박계첨(朴癸詹)의 배관기가 있다. 김정희는 1849년 8월~9월에 노호(鷺湖, 노량진) 노홍루(老紅樓)에서 머물렀는데, 김정희의 평은 이 때 쓴 것으로 보인다. 김구오(金九五)와 박계첨(朴癸詹)은 김정희가 제주 유배 시절에 가르친 제자들이다. 노홍루에서 김정희와 함께 이 그림을 감상하고 배관기를 써 넣은 것으로 보인다. 전기(田琦)부터 강봉주(姜鳳周)까지 14명의 글은 1849년에 쓴 것이고, 김석준(金奭準, 1831~1915)부터는 후에 쓴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에 있는 서상우(徐相雨, 1831~1903) 시는 1893년의 것이다.

유최관의 《초산잡저(樵山雜著)》에는 「제구여추림소산도후(題九如秋林蕭散圖後)」라는 제목의 글이 별도로 실려 전하고 있다. 또 오경석의 평은 그의 《천죽재차록(天竹齋箚錄)》에 실려 있는데, 아들 오세창(吳世昌)이 편찬한 《근역서화징(槿域書畫徵)》 「유재소(劉在韶)」조에 거의 그대로 실려 있다. 유재소의 이 그림은 국내에서는 기록으로만 알려져 왔다. 그러다가 일본 교토[京都]에서 간행된 《한국고서화도록(韓國古書畵圖錄)》(幽玄齋,1996)에 수록되어 국내에 간단히 소개된 바 있다. 그러나 실물을 보지 못하고 도록에 실린 내용만 가지고 간단한 소개에 그쳤다. 따라서 본 자료는 실물이 처음으로 출현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아울러 추사 김정희 유파 회화 연구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작가소개]

유재소 이외에 25명이 제시(題詩) 또는 제지(題識)를 남겼는데, 대표적으로 세 명만 살펴보겠다. 일부는 호만 기록되어 있어 이름을 알 수 없다.

유재소(劉在韶, 1829~191): 자(字)는 구여(九如). 호(號)는 학석(鶴石), 형당(蘅堂), 소천(小泉) 등.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 김정희의 전담 장황사였던 유명훈(劉命勳)의 아들이며 대원군의 겸인(傔人)이었다. 여항문인으로 1847년에 결성된 벽오사(碧梧社)에 참여하여 조희룡(趙熙龍), 전기(田琦), 김수철(金秀哲), 유학영(柳學永), 유숙(劉淑), 정지윤 등과 어울리기도 했다. 유재소는 전기(田琦)와 절친하여 이초당(二草堂)이란 공동 서재를 운영하기도 했다. 대표작(代表作)으로 「청송도(靑松圖)」, 「추수계정도(秋樹溪亭圖)」 등이 알려져 있지만, 현전 작품은 많지 않다.

전기(田琦, 1825~1854): 초명(初名)은 재룡(在龍). 자(字)는 기옥(奇玉), 위공(瑋公), 이견(而見) 등, 호(號)는 고람(古籃), 두당(杜堂).

추사 김정희 제자로 시서화(詩書畵)에 뛰어나 김정희의 사랑을 받았다. 김정희의 남종파(南宗派) 화풍(畫風)을 계승(繼承)하였고, 산수화(山水畫)에 뛰어났다. 예서도 잘 썼다. 작품으로 「계산포무도(溪山苞茂圖)」,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등이 있다.

조희룡(趙熙龍, 1789~1866): 본관은 평양(平壤). 자는 치운(致雲). 호는 우봉(又峰), 석감(石憨), 단로(丹老) 등.

추사 김정희 제자로 서화에 모두 뛰어났다. 저서로 여항인의 전기(傳記)를 기록한 《호산외사(壺山外史)》가 있고, 이밖에도 다수의 저술과 작품이 전하고 있다.

 

[참고자료]

오세창, 《근역서화징(槿域書畫徵)》

유최관, 《초산잡저(樵山雜著)》

幽玄齋, 《한국고서화도록(韓國古書畵圖錄)》, 京都, 1996.

손정희, 「19세기 벽오사 회화 연구」, 홍익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2.

 

[해제자]

박철상(한국문헌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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