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5침안 선장
필사본
발행지 미상: 발행자 미상: 필사 시기 미상(1780년 가능성)
55卷4冊(完帙) : 無邊, 無界, 11行字數不定, 無魚尾
기타 주기사항
1책 첫 장 장서인: 辟支菴主
4책 마지막에 발문: 庚子秋社日 溪西無名叟識
[목차]
元책(74장): 권1~17
亨책(72장): 권18~30
利책(75장): 권31~39
貞책(76장): 권40~55/발문
[내용]
조선시대 문인 회헌(悔軒) 이정작(李庭綽, 1678~1758)이 창작한 작품으로, 중국 송나라를 배경으로 범씨와 유씨 가문 간에 일어난 쟁총형 가정소설이다. 범경문이 유혜란과 정혼한 상태에서 천자의 늑혼(勒婚, 강제 혼인)으로 여교란을 정실로 맞이한 다음 유씨를 부실로 맞이하며 전개되는 처첩갈등과, 유씨의 남동생 유원과 정혼한 장씨가 천자의 후궁에 내정되면서 생기는 혼사장애 등이 주요 내용이다.
[자료의 특성 및 가치]
《증산옥린몽》은 가정소설에 분류되는 작품으로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의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조성기(趙聖期, 1638~1689)의 《창선감의록》 등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라 평가된다. 17세기 중엽 본격적으로 제기된 가문 의식의 강화 분위기 속에 창작된 작품들이다. 이후의 소설사에서 전개되는 가문 소설의 초창기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본격적인 장편소설 시대를 여는 작품들이다.
17세기 초 왕실을 중심으로 소설 읽기는 하나의 새로운 유행으로 자리 잡았고, 17세기 후반 서울의 상층 사대부가에서는 여성을 중심으로 온 가족이 함께 어울려 소설을 읽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18세기 초 아직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포의(布衣) 신세에 상층 가문에 속하지도 못한 소북 당파의 한미한 문사인 이정작이 「옥린몽」과 같은 장편소설을 지었다는 점은, 18세기에 이르러 장편소설 향유가 상층 사대부 집안만이 아니라 사대부들 전반에 걸친 보편적인 문화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는 자기(瓷器)를 생산하던 분원공소의 공인으로, 중인 이하의 평민층에 속하는 지규식(池圭植)의 《하재일기(荷齋日記)》에도 「옥린몽」을 주변의 비슷한 처지의 지인들에게 빌려 읽었다는 기록이 나오는 점에서, 당시에는 평민 남성들도 재밌게 읽던 오락물로 향유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옥린몽》은 한글본과 한문본이 모두 존재하며 그 이본의 수도 50여 종에 이른다. 국립한국문학관 소장본은 한문본이다. 한문본의 경우 ‘영수창선기(永垂彰善記)’와 ‘몽린기(夢麟記)’라는 제명으로 전하는 이본도 있다. 선행 연구에서는 한문본 19종, 한글본 34종으로 총 53종의 이본을 찾아 학계에 소개하였는데, 각 이본은 내용상 큰 차이가 없으며 한문본의 경우 한글본보다 더욱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 한문본은 형식적으로 크게 장회체와 비장회체 이본으로 나뉘고, 장회체는 다시 34회본과 52회본으로 분화되었는데, 이때의 저본은 한글본 《옥린몽》 15권으로 이를 처음 번역한 것이 비장회체 한문본이고, 이후 여기서 분화되어 다양한 장회체 한문본이 나왔다. 또한 53회 한문본은 주로 ‘영수창선기’라는 제명으로 전하는데, 여기에만 나오는 내용이 있어 다른 이본과 차이를 보인다고 하였다.
《옥린몽》에 대한 학계의 논의는 1) 이정작이 저자인가, 2) 처음 시작이 한글소설인가 한문소설인가, 3) 작품의 창작 시기가 언제인가에 대한 문제들이 있다. 먼저 1) 저자의 문제를 살피면, 조언림의 《이사재기문록(二四齋記聞錄)》과 유희의 《문통(文通)》에 나온 기록들을 토대로 이정작이 지은 소설로 거의 확정되었다. “이정작이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등을 보고 《옥린몽》 15권을 저작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조언림의 《이사재기문록》은 그간 실물의 행방이 묘연하였는데, 고려대학교와 국립중앙도서관에 각각 소장된 시화선집 《해동시화초(海東詩話抄)》에서 발견되었고, 이 중 국립중앙도서관본이 더 자세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다음으로 2) 처음 시작이 한글이냐 한문이냐에 대해서는, 《문통》의 “시랑 이정작이 포의일 때 언문소설을 지었는데”와 모리스 쿠랑의 《한국서지》에 나온 서지 사항을 통해 처음에는 ‘한글소설(15권)’로 지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3) 창작 시기는 《문통》의 “마침내 옛 책을 꺼내 이어 써서 한 질을 이루어 그 부인의 원을 씻어 주었는데, 바로 이 해에 정작이 과거에 급제하였다”라는 기록을 통해 1709년 이전의 포의 시절에 창작하기 시작하여 중간에 그만두었다가, 1714년 증광문과에 급제한 해에 최종 완성되었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국립한국문학관 소장본은 ‘증산몽린록’이라는 제명으로, 이러한 제명의 책은 이제까지 없었고, 오직 모리스 쿠랑의 《한국서지》 기록에서만 나올 뿐이었다. 《한국서지》(269쪽)에 따르면, “《증산옥린몽》 8책, 필사본—처음 한글로 된 책은 上元後丙寅에 서문을 추가한 溪西가 수정하여 한자로 썼다. 한글본의 작가는 悔軒이다”라고 하였다. 선행 연구에서 최호석은 ‘상원후병인’을 1866년으로 해석하고, 이정작이 처음에 한글로 《옥린몽》을 지었고 ‘溪西’라는 인물이 1866년에 《옥린몽》을 ‘증산옥린몽’이라는 이름으로 한문 번역하고 서문을 추가하였다면서, 다만 현재 모리스 꾸랑이 언급한 《증산옥린몽》을 찾을 수 없어 이 기록이 확실한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국립한국문학관 소장본은 모리스 쿠랑이 말한 《증산옥린몽》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책으로, 그간 기록으로만 존재하던 책의 실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표제는 ‘玉麟夢’이지만 모든 책의 권수제가 ‘增刪玉麟夢’으로, 현재까지 확인되는 유일한 《증산옥린몽》이다. 무엇보다 4책 마지막에 붙어 있는 ‘溪西’의 발문을 통해 원본 《옥린몽》과 《증산옥린몽》의 편찬 배경 등 그간 밝혀지지 않은 여러 가지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다.
발문 첫머리에서 저자는 이정작(悔軒翁)이 《옥린몽》을 지었다는 이야기를 어르신들에게 들었고, 이정작이 어머니가 편찮으실 때 곁에서 간병하며 심심풀이로 이 책을 짓다가 다 완성하지 못한 중에 어머니의 병이 나아 중간에 그만두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이정작의 《옥린몽》 창작 경위는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또한 자신이 이 책을 얻어다가 언문을 대신하여 한문으로 썼다고 한 점에서 《옥린몽》이 원래 언문 소설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문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원본 내용에서 빠지거나 부족한 부분을 고치고 보충하였다고 하며, 이 책의 제명이 ‘증산(增刪)’이 된 이유를 설명하였다. 이상의 내용들은 모리스 쿠랑의 기록과 거의 일치한다. 하는 내용이다.
다만 마지막 간기에서 ‘庚子秋社日 溪西無名叟識’라 한 점에서, 모리스 쿠랑의 ‘상원후병인에 서문을 추가했다’는 내용과 차이를 보인다. 현재로서는 ‘계서’가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지만, 발문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건대 이정작과 관련 있는 집안의 인물로 보인다. 발문의 경자년은 이 작품이 18세기 초 이후 창작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1780년이나 1840년일 가능성이 있다.
국립한국문학관 소장본 《증산옥린몽》은 ‘55권(회)’ 장회체 형식으로 이제까지 알려진 한문본에서 볼 수 없는 장회 구분을 보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기존의 다른 장회 구분을 보이는 이본과 비교하여 그 선후 관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 외에 《증산옥린몽》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붉은색과 푸른색의 비점과 권점이 찍혀 있으며, 본문 상단의 여백에 필사자의 필체로 주석과 감상 등의 짧은 기록들이 적혀 있어 이 책의 독서와 향유의 일면을 살필 수 있다.
정리하면, 문학관 소장 《증산옥린몽》은 그간 《옥린몽》의 저자와 창작 경위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였던 모리스 쿠랑의 기록을 반영한 유일한 실물 책이다. 또한 증보자 ‘계서’의 발문을 통해 《옥린몽》과 《증산옥린몽》의 창작 배경에 대해 자세한 정보가 제공되고, 필사자와 독자의 독서 행위를 살필 수 있는 흔적들을 갖고 있는 책으로서, 향후 《옥린몽》 연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중요한 자료라 할 것이다.
[작가소개]
이정작(李庭綽, 1678~1758): 조선 후기 도승지, 이조참판, 공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호는 회헌(悔軒).
아버지는 이만봉이며, 어머니는 조익구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재지가 뛰어나고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1714년(숙종 40)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대교에 임명되었다. 이어 수찬과 전적을 역임하고, 1727년(영조 3) 중시문과에 장원급제하여 통정대부에 올랐다. 병조참의와 예조참의, 진주목사 등을 거쳐 도승지와 이조ㆍ형조ㆍ공조 등의 참판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참고자료]
모리스 꾸랑 원저ㆍ이희재 번역, 《(수정번역판) 한국서지》, 일조각, 1994.
최호석, 《옥린몽의 작가와 작품세계》, 다운샘, 2004.
임치균, 「《문통》의 기록으로 본 ’옥린몽‘에 관한 몇 가지 문제」, 《한국고전연구》 11, 한국고전연구학회, 2005, 32–49쪽.
[해제자]
노경희(울산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