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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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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史 樂志(고려사 악지)

  • 자료번호

    문6719
  • 저자명

    정인지(鄭麟趾, 1397~1478) 등 봉교수(奉敎修)
  • 발행년도

    [1613년(광해군 5)]
  • 크기(cm)

    세로 25.3cm, 가로 18.6cm
  • 개요

    1451년경 정인지鄭麟趾 등이 수많은 교정 끝에 완성한 고려의 정사正史 《고려사高麗史》 가운데 문묘와 조정에서 사용한 음악에 관한 기록인 악지樂志 부분이다. 2권 1책으로 을해자 번각본이다. 국립한국문학관 소장본은 1613년에 간행된 것과 동일한 판본으로 소장 가치가 높다.
  • 키워드

    고려사, 정인지, 속요, 악장, 을해자 번각

소개

[기본정보]

5침안 선장

목판본(을해자 번각본)

발행지미상 : 발행처미상, [1613(광해군 5)]

2卷1冊(缺帙) : 四周單邊 半郭 20.1×14.8 cm, 有界, 9行17字 註雙行, 上下內向黑魚尾(1-2葉花紋魚尾混入)

 

권24(30장), 권25(48장)

 

[목차]

志 권24(高麗史七十) 樂一: [序], 雅樂(親祠登歌軒架 등)

志 권25(高麗史七十一) 樂二: 唐樂(樂器 등), 俗樂(樂器 등), 三國俗樂(新羅 등), 用俗樂節度

 

[내용]

정인지 등이 편수한 《고려사》 가운데 문묘와 조정에서 사용한 음악에 관한 기록인 악지(樂志) 부분만 간행한 것이다. 악지의 서문, 아악(雅樂), 당악(唐樂), 속악(俗樂)의 순으로 관련 제도나 노래명, 가사의 대략적 내용 등을 기록하였다.

 

[자료의 특성 및 가치]

국립한국문학관 소장본은 《고려사(高麗史)》 권70~71인 악지(樂志) 부분이다. 같은 판식의 자료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청구기호: 奎貴3539-v.1-85, 보물), 고려대학교 만송문고(청구기호: 만송 B3 A95) 등에 소장되어 있는데, 이 중 규장각 소장본에는 ‘萬曆四十一年(1613)九月日 內賜高麗史一件 太白山史庫上 左承旨臣李[手決]’이라는 내사기(內賜記)가 있으며, 고려대학교 소장본에는 표지에 ‘天啓二~六年(1622~1626)’이라는 기록의 고문서가 배접되어 있다. 이를 통해 해당 판본이 1613년에 간행된 을해자 번각본임을 확인할 수 있다. 국립한국문학관 소장본은 규장각본에 비해 인쇄 상태는 조금 떨어지지만, 광곽 균열 및 글자 마모 상태가 거의 동일하여 위의 두 종과 비슷한 시기에 인쇄된 자료로 볼 수 있어 그 소장 가치가 높다.

《고려사》 악지의 서문에 따르면, 악지는 15세기까지 한반도에 전해 내려오던 음악 관련 전적(典籍)이 부족한 상황에서 종묘, 조정에서 군신이 사용하던 각종 음악 제도를 상고하고 중국의 당악(唐樂)뿐 아니라 삼국(三國) 및 당시까지 현전하는 속악(俗樂)의 이름과 그 노래를 지은 의도를 기록한 것이다. 특히 속악 가사는 속되고 상스러운 표현[俚語]이 많다는 이유로 기재하지 않았다. 먼저 아악(雅樂)에서는 원구친사(圜丘親祀), 사직(社稷), 태묘(太廟) 등 각종 공식 행사에서 사용하는 악기의 종류와 수량, 활용하는 복식, 음악을 연주하는 순서나 행사 절차, 연주곡명 등이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당악(唐樂)은 고려에서 사용한 당악의 악기나 행사별 절차, 치어(致語)나 구호(口號), 악곡명을 정리한 것이다. 속악(俗樂)은 여러 악보(樂譜)를 두루 참고하여 「동동(動動)」, 「서경(西京)」, 「정과정(鄭瓜亭)」 등 31편의 속요의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일찍부터 주목받았다. 삼국속악(三國俗樂)은 가사가 전하지 않는 옛 고구려, 백제, 신라의 속악 14편의 명칭을 수록하였다.

이처럼 악지는 고려와 조선의 위정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예악을 활용한 문명의식과 정치관, 일실(逸失)된 속악 작품이나 각종 악장(樂章)의 존재 양상 규명에 긴밀히 기여하였다. 임진왜란으로 조선의 수많은 전적이 불타 없어지자 광해군이 1610년 음력 12월, 《고려사》 등 후대에 전해줄 서책을 각지로 내려보내 정밀하게 인쇄하여 송부하게 할 만큼, 조선의 풍속 교화, 문화적 수준 등을 제고하는 데에도 활용된 중요한 자료이다.

 

[작가소개]

정인지(鄭麟趾, 1397~1478): 자 백저(伯雎), 호 학역재(學易齋), 시호 문성(文成).

1414년(태종 14) 대과에 장원급제한 뒤, 태종부터 성종까지 총 일곱 임금을 모시며 조선의 각종 문물을 정리하는 데 큰 공을 세운 문인이자 정치인이다. 집현전직제학(集賢殿直提學), 병조판서(兵曹判書), 좌의정(左議政), 영의정(領議政)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세종대의 한글 창제, 세조대의 경전 구결 작업을 비롯해 조선의 천문, 역법, 음악 등 문풍을 진작하고 각종 문물 제도를 정비하는 데 필요한 사업과 서적 편찬 작업에 참여하였다. 대표적으로 《훈민정음해례(訓民正音解例)》,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 《치평요람(治平要覽)》, 《역대병요(歷代兵要)》, 《고려사》, 《고려사절요》,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등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467년(세조 13) 《시경구결(詩經口訣)》 작업을 담당하였으나 현전하지 않는다. 개인 저술로 《학역재집(學易齋集)》이 있으나 현전하지 않는다.

 

[참고자료]

한국고문헌종합목록DB, 국립중앙도서관, https://www.nl.go.kr/korcis/index.do

고려사DB, 국사편찬위원회, https://db.history.go.kr/goryeo/itemLevelKrList.do?itemId=kr&types=r

조선왕조실록DB, 국사편찬위원회, https://sillok.history.go.kr/main/main.do

김광철, 「《고려사》 판본과 그 간행 시기」, 《석당논총》 59,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14, 145-174면.

박현규, 「《高麗史》 〈唐樂〉 원문 校勘에 수반되는 판본 선택의 중요성」, 《중국어문논총》 22, 중국어문연구회, 2002, 221-243쪽.

장지연,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 속악(俗樂) 편집의 특징과 정치성」, 《국문학연구》 35, 국문학회, 2017, 121-146쪽.

 

[해제자]

구슬아(계명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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