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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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帝王韻紀(제왕운기)

  • 자료번호

    문6983
  • 저자명

    이승휴(李承休, 1224~1300) 제진(製進)
  • 발행년도

    [17세기]
  • 크기(cm)

    세로 30.5cm, 가로 19.5cm
  • 개요

    고려 중기의 문인 이승휴(李承休)가 중국과 동국의 역대 왕조의 흥망 등을 간추린 5언과 7언의 영사시(詠史詩)로, 1287년에 저술한 것이다. 원간섭기 초의 혼란한 국면을 타개하고 동국의 자주성을 선양하기 위해 임금과 신료들에게 감계가 되도록 만들었다. 국립한국문학관 소장본은 17세기에 간행된 것으로 보이며, 깨끗한 인쇄 상태를 보이는 완질본이다.
  • 키워드

    고려, 이승휴, 단군, 영사시, 장편고시

소개

[기본정보]

5침안 선장

목판본

발행지미상 : 발행처미상, [17세기]

2卷1冊(完帙, 총33장) : 四周雙邊 半郭 22.5×15.5 cm, 有界, 9行18字 註雙行, 上下內向2葉花紋魚尾

 

하권 제1장 결락. 권상(17장, 표문 포함), 권하(16장, 발문 포함)

表: 至元二十四年(1287)二月日頭陀山居士臣李承休

上卷幷序: 頭陀山居士臣李承休製進

跋: 司錄參軍事兼掌書記升仕郞良醞令鄭玿

後題: 副使臣李源謹題

後題: 按廉使中散大夫兵部侍郎臣安克仁題

刊記: 至正二十年庚子(1360)五月日, 東京開板, 書 進士臣金禧

跋: 永樂丁酉(1417)五月旣望, 朝散大夫慶州儒學敎授官李輊跋

刊記: 校正 幼學崔有[海], 判官通德郞兼勸農兵馬節制判官潘泳, 府尹嘉靖大夫兼 兵馬節度使勸農管學事李承幹, 都觀察黜陟使嘉靖大夫兼監倉安集轉輸勸農管學事提調刑獄兵馬公事李之剛, 經歷奉列大夫李允適

 

[목차]

帝王韻紀進呈引表(李承休)/권上: 幷序(李承休), 盤古~正統相傳頌/권下: [東國君王開國年代 幷序]~本朝君王世系年代/世系圖/跋(鄭玿)/後題(李源)/後題(安克仁)/刊記/跋(李輊)/刊行者名單

[내용]

고려 중기의 문인 이승휴(李承休)가 찬술한 장편고시 형태의 영사시(詠史詩)이다. 상권(上卷)은 반고(盤古)부터 금(金)까지 중국 왕조의 흥망을, 하권(下卷)은 단군(檀君)부터 충렬왕 당대까지 한반도의 역사를 순차적으로 정리하고 쌍행주에 수많은 문헌을 전거로 제시하여 역사적 객관성을 확보하려 하였다.

 

[자료의 특성 및 가치]

국립한국문학관 소장 《제왕운기(帝王韻紀)》는 권수제는 ‘帝王韻紀’, 판심제는 ‘韻紀’이다. 발문과 후제를 통해 1295~1297년 사이 진주(晉州)에서 초간된 뒤, 1360년 이승휴의 조카사위 안극인이 동경(東京=경주)에서 ‘사주단변, 무계, 8행16자 주쌍행, 무어미’의 판식으로 중간(重刊)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여말선초의 중간본은 보물(곽영대ㆍ삼성출판박물관 소장)로 지정되어 있다. 국립한국문학관 소장 자료는 이 중간본과 달리 2엽화문어미의 형태로 미루어 보아 17세기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권하에 고려시대의 피휘인 ‘高舜’ 대신 ‘堯舜’이라고 바꾸었기 때문이다. 같은 판식의 자료가 경기대학교 도서관, 계명대학교 벽오고문헌실, 국립중앙박물관(이건희 기증 자료) 등에 소장되어 있는데, 광곽의 갈라짐 등에 있어 계명대학교 소장본보다 조금 뒤에 인쇄된 것이다. 17세기에 재간행된 것은 조선 문인들의 단군 고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등 상고사에 대한 관심을 방증한다.

이승휴가 직접 작성한 표에 따르면, 반고부터 금나라에 이르기까지 중국 역사, 단군부터 충렬왕에 이르기까지 동국 역사의 근원과 차이점 등을 시로 읊고, 독자로 임금과 신료들을 상정하여 역사적 경계로 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편찬하였다. 원간섭기 초기에 혼란해진 고려의 군신 관계를 비판하고, 군주와 신하가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자주성을 되찾기를 바라는 의도를 5언과 7언의 장편 영사시에 담아냈다. 비슷한 시기 고려의 주체성을 다시 수립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이규보의 《동명왕편(東明王篇)》 등과 함께 고려 문인들의 역사의식과 문학적 수준을 증명하는 자료이다. 특히 「단군본기」 등의 서명과 기록을 상세한 쌍행주를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삼국유사(三國遺事)》와 함께 상고사 연구의 중요한 문헌 자료로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작가소개]

이승휴(李承休, 1224~1300): 자 휴휴(休休), 호 두타산인(頭陀山人)ㆍ동안거사(動安居士).

1252년 최자(崔滋)가 주관한 과거에 합격하였다. 전중시사(殿中寺史)로 충렬왕을 모시던 중 과도한 토목공사에 대해 간언하다 파직당한 뒤 강원도 삼척(三陟)의 두타산(頭陀山)으로 가서 은거하는 등, 정직하고 곧은 성품으로 알려졌다. 서장관으로서 원나라에 사신 가서 웅장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원나라의 황제와 한림학사들을 탄복하게 하였다. 귀국후 감찰어사(監察御史), 우정언(右正言), 우사간(右司諫) 등을 역임하였으나 1280년(충렬왕6)에 다시 파직되었다. 이 시기에 구동(龜洞) 은거지에서 불서(佛書)를 보며 《제왕운기》를 편찬하여 충렬왕에게 진헌하였다. 1298년, 충선왕의 부름으로 노년에 다시 출사하였지만 밀직부사(密直副使)로 치사하였다. 개인 저술로, 원나라에 오갈 때 지은 시문을 모은 《빈왕록(賓王錄)》, 《동안거사집(動安居士集)》이 전한다.

 

[참고자료]

한국고문헌종합목록DB, 국립중앙도서관, https://www.nl.go.kr/korcis/index.do

고려사DB, 국사편찬위원회, https://db.history.go.kr/goryeo/itemLevelKrList.do?itemId=kr&types=r

김경주, 「帝王韻紀의 硏究 : 板本을 중심으로」, 《인문학연구》 28, 중앙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99, 5-19면.

박인호, 「이승휴의 《제왕운기》에 대한 연구 현황과 쟁점」, 《국학연구》 18, 한국국학진흥원, 2011, 363-394면.

심경호, 「고려 중, 후기 역사 서술문체의 다변화와 이승휴의 선택」, 《선도문화》 28,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2020, 55-124쪽.

채웅석, 「《제왕운기(帝王韻紀)》로 본 이승휴(李承休)의 국가의식과 유교관료정치론」, 《국학연구》 21, 한국국학진흥원, 2012, 271-307쪽.

 

[해제자]

구슬아(계명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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