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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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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賦(조선부)

  • 자료번호

    문7372, 문7373
  • 저자명

    동월(董越, 1430~1502) 찬
  • 발행년도

    15세기말~16세기초
  • 크기(cm)

    (문7372) 세로26.6cm, 가로18.0cm ; (문7373)세로27.3cm, 가로18.8cm
  • 개요

    《조선부朝鮮賦》는 1488년(성종 19)에 조선에 왔던 명나라 사신 동월董越이 조선의 지리, 산천, 문물, 풍속, 제도 및 초목금수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견문한 조선의 상황을 부賦의 형식으로 읊은 책이다. 1490년(성종 21)에 중국에서 처음 간행하였고, 1492년(성종 23)에 국내에 유입되어 조선 전기에만 3종의 금속활자본, 1종의 목판본이 출현하였다. 국립한국문학관 소장 《조선부》는 갑진자본(문7372)과 초주갑인자본(문7373)으로 현전본이 매우 희소하며, 그중에서도 초주갑인자본은 국내 유일본으로 추정되어 가치가 높다.
  • 키워드

    동월, 조선부, 갑진자, 초주갑인자, 사행록

소개

[기본정보]

〈문7372〉

 5침안 선장

 금속활자본(갑진자)

 발행지불명 : 발행처불명, 15세기말~16세기초

 不分卷1冊(18張) : 四周雙邊 半郭 20.7 x 14.4 cm, 有界, 12行19字 註雙行, 上下黑口, 上下內向黑魚眉

 

 朝鮮賦引: 時弘治三年(1490)臘月八日賜進士翰林院庶吉士門人泰和歐陽鵬拜書

 朝鮮賦後序: 弘治庚戍(1490)菊月九日吉安府泰和縣 ... 幼學訓導擧人桂林王政書

 

〈문7373〉

 5침안 선장

 금속활자본(초주갑인자)

 발행지불명 : 발행처불명, 15세기말~16세기초

 不分卷1冊(31張) : 四周單邊 半郭 21.7 x 14.8 cm, 有界, 8行15字 註雙行, 上下內向黑魚眉

 

[목차]

朝鮮賦引/朝鮮賦/朝鮮賦後序

 

[내용]

전반부에는 사행의 과정에서 견문한 조선의 위치와 지형, 풍속, 산천, 누대, 산수 경관, 문화 유적, 왕도의 산세와 지형, 사신단 연회 모습, 사행 임무를 기술하였다. 후반부에는 귀국 후 조선에서의 일상을 회상하는 내용으로 성균관, 한강, 도성, 관가 등의 모습, 백성들의 집과 풍습 및 모습, 조선의 각종 산물 등을 상술하였다.

 

[자료의 특성 및 가치]

《조선부》는 1488년(성종 19)에 명나라 효종(孝宗)인 홍치제(弘治帝)의 등극 사실을 알리려고 조선에 파견되었던 명사(明使) 동월(董越, 1430~1502)이 약 한 달 정도 조선에 머물면서 견문했던 일들을 모아 1490년에 편찬한 책이다. 이 책은 함축적 운문 형식인 부(賦)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내용이 소략하여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각 구절마다 주석을 부기하여 조선 초기의 지리와 제도 및 풍속 등을 생생하게 기술하였다.

국립한국문학관 소장 《조선부(朝鮮賦)》 갑진자본(문7372)은 불분권 1책으로, 권두에 「조선부인(朝鮮賦引)」 2장, 본문 15장, 권말에 「조선부후서(朝鮮賦後序)」 1장 총 1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형태적인 특징은 ‘사주쌍변, 12행19자, 상하흑구, 상하내향흑어미’로 전형적인 조선전기본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조선부인」은 1490년(홍치 3)에 구양붕(歐陽鵬)이 지은 서문이고, 「조선부후서」는 1490년(홍치 3)에 왕정(王政)이 지은 발문이다. 구양붕과 왕정의 글은 중국본에 있는 내용으로, 조선에서의 간행 시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마지막 장 하단에 장방형의 묵인이 날인되어 있으나 훼손되어 판독이 어렵다. 전체적으로 낙장이 없이 비교적 인쇄 상태가 깨끗하며, 현전본이 드문 조선 전기 갑진자본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이 판본과 동일본으로는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본(奎中2187)만이 알려져 있다.

또 다른 소장본인 《조선부(朝鮮賦)》 초주갑인자본(문7373)은 불분권 1책으로, 권두에 「조선부인」 2장, 본문 27장, 권말에 「조선부후서」 2장 총 3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형태적인 특징은 ‘사주단변, 8행15자, 상하내향흑어미’로 갑진자본과 마찬가지로 조선 전기본의 모습이 나타난다. 전체적으로 낙장이 없고, 인쇄 상태가 양호하며, 현재 동일 판본이 확인되지 않는 유일본이라는 점에서 매우 가치가 높다.

《조선부》는 조선 초기의 지리, 산천, 문물, 풍속, 제도 및 초목금수 등의 산물에 이르는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어서 그 시대의 역사와 제도 및 풍속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자료로 자주 활용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삼국에서 여러 차례 간행되고 유통되었던 서적으로서 출판문화사적인 의의도 지니고 있다.

 

[작가소개]

동월(董越, 1430~1502): 자는 상구(尙矩). 명나라 때 강서성(江西省) 영도(寧都) 사람.

1459년(천순 3)에 향공(鄕貢)에 선발되어 국자감(國子監)에서 수학하였고, 1469년(성화 5)에 진사(進士)에 급제하여 한림원 편수(翰林院編修)에 제수되었다가 시독(侍讀)을 거쳐 1484년(성화 20)에 동궁강독(東宮講讀), 1487년(성화 23)에 경연강관(經筵講官)이 되었다. 효종이 즉위한 홍치 원년(1488)에 우춘방 우서자 겸 한림원시강(右春坊右庶子兼翰林院侍講)의 자격으로 공과우급사중(工科右給事中) 왕창(王敞) 등과 함께 조선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정월에 파견되어 5월에 귀국하였는데, 귀국 후에 보고 들은 바를 기술하여 《조선부》를 편찬하였다. 1491년(홍치 4)에 《헌종실록(憲宗實錄)》의 편수에 참여하여 태상소경 겸 시강학사(太常少卿兼侍講學士), 1492년(홍치 5)에 일강(日講), 1493년(홍치 6)에 남경예부우시랑(南京禮部右侍郎), 남경공부상서(南京工部尙書) 등에 임명되었다. 1502년(홍치 15)에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태자소보(太子少保)로 추증되었고, 시호는 문희(文僖)이다. 그의 문집으로 《규봉고(圭峰稿)》, 《문희집(文僖集)》 24권이 있고, 《사동일록(使東日錄)》, 《조선잡지(朝鮮雜志)》가 있으나, 현재 《규봉고》, 《문희집》은 전해지지 않는다.

 

[참고자료]

한국고문헌종합목록

한국고문서자료관

조선왕조실록

董越 著ㆍ윤호진 옮김, 《조선부》, 도서출판 까치, 1994.

董越 지음ㆍ김영국 옮김, 《국역 조선부》, 심미안, 2013.

高秋鳳, 「董越及其≪朝鮮賦≫硏探」, 《중국학연구》 67, 중국학연구회, 2014, 3-47쪽.

김소희, 「《朝鮮賦》의 한중일 간행과 유통」, 《장서각》 33, 한국학중앙연구원, 2015, 120-148쪽.

 

[해제자]

김소희(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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