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권지 정보]
(저자) 朝鮮푸로레타리아藝術同盟文學部 (발행처) 集團社 (발행연도) 1932년(昭和 7年)
[목차]
一, 序, 朴英熙
一, 製紙工場村, 李箕永
一, 元甫(서울), 李箕永
一, 아들의마음, 趙明熙
一, 양회굴둑, 尹基鼎
一, 小作村, 趙重滾
一, 調停案, 金南天
一, 過渡期(새벽), 韓雪野
一, 씨름, 韓雪野
一, 一切面會를拒絶하라, 宋影
[내용]
이기영의 「製紙工場村」은 ‘동맹파업’을 묘사한다. 「元甫(一名서울)」는 시골에서 상경했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원보’와 그를 구하려고 했던 ‘석봉’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조명희의 「아들의마음」에서는 사고로 인해 왼팔과 늑골이 부러진 ‘나’가 병원에서 팔을 자른 후 “메-데- 행렬”에 참가하는 꿈을 꾼다. 윤기정의 「양회굴둑」은 동아제사공장에서 삼백 명 여공이 힘을 합치는 과정을 보여주고, 조중곤의 「小作村」은 진흥회, 근농공제조합, 보안조합, 납세조합, 노동야학이 있는 마을을 묘사하고 있다. 한설야의 「過渡期(一名새벽)」에 등장하는 ‘창선’은 간도에서 살 수 없게 되자 사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생각했던 바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설야의 「씨름」에서 노동자는 대개 농민이므로, 서로 끊을 수 없는 연을 맺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자료의 특성 및 가치]
속표지에 가로쓰기로 “캅ᅋᅳ作家七人集”, “朝鮮푸로레타리아藝術同盟文學部編”, “集團社版”이 표기되어 있다. 김남천의 「조정안」은 “一幕” 희곡, 송영의 「일체 면회를 거절하라」는 “全一幕” 희곡으로 표기되어 있다. 한설야의 「씨름」에서는 “이것은 「過渡期」(朝光四月號)의 續篇이다.”라는 문장이 눈에 띈다. 판권지에는 “編輯 兼 發行人 尹鐘惠”로 표기되어 있다.
《카프시인집》과 《카프작가칠인집》, 그리고 《농민소설집》 사이의 관계에 주목해 볼 수 있다. 《카프작가칠인집》의 판권지 상단에 《카프시인집》 광고를 싣고 있는데, “朝鮮프로藝術同盟文學部 編”, “《카ᅋᅳ詩人集》 普及大衆版(再版) 出來”, “昭和七年三月二十日發行”, “編輯 兼 發行人 尹鍾惠”, “發行所 集團社”와 같은 정보를 담고 있다. 목차는 “(김창술(기차는 북으로 북으로/오월의 훈기(蒸氣)/가신 뒤/앗을 대로 앗아라) 권환(정지한 기계/그대/우리를 가난한 집 여자라고/가려거든 가거라/소년공의 노래/타락/머리를 땅까지 숙일 때까지) 임화(다 없어졌는가/네거리의 순이/우리 오빠와 화로/제비/양말 속의 편지/우산 받은 요꼬하마의 부두) 박세영(누나) 안막(삼만의 형제들―북쪽 농장의 일/백만 중의 동지)”과 같다. 《카프작가칠인집》은 《농민소설집》과 더불어 1930년대 초 카프에서 펴낸 소설집으로, ‘군기 사건’ 이후 카프 조직의 쇄신을 기하며 간행되었다. 수록 작품의 특징은 카프의 목적의식기의 창작 경향에 따라 정치적 목적의식을 강하게 담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작가소개]
박영희(朴英熙, 1901~미상): 1901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916년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입학, 나도향, 김기진 등과 친교를 맺는다. 1921년 《장미촌》, 1922년 《백조》 동인으로 활동한다. 1926년 이후 카프에서 김기진과 내용ㆍ형식 논쟁을 전개한다.
이기영(李箕永, 1895~1984): 충청남도 아산에서 태어났다. 1922년 일본 세이소쿠영어학교를 다니다 관동대지진으로 귀국했다. 1924년 《개벽》 현상공모에 「오빠의 비밀편지」가 당선되었다. 1933년 《조선일보》에 「서화」를 1933년~1934년 《조선일보》에 「고향」을 연재한다.
조명희(趙明熙, 1894~1938): 1894년 충청북도 진천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진천에서 3ㆍ1운동에 참가했다가 투옥된다. 1920년 도쿄에서 유학생 김우진과 극예술협회를 조직한다. 1921년 희곡 「김영일의 사」를 발표한다. 1923년 창작 희곡집 《김영일의 사》를 동양서원에서 출판한다. 1925년 《개벽》에 단편 「땅속으로」를 발표하고, 카프 활동을 한다. 1927년 《조선지광》에 「낙동강」을 발표함으로써 카프의 제1차 방향전환을 작품으로 보여준다. 1928년 백악사에서 창작집 《낙동강》을 발간한 후 소련으로 망명한다.
윤기정(尹基鼎, 1903~1955): 1903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922년 염군사에서 활동하였다. 1927년 《문예시대》에 「새살림」을 발표한다. 《조선일보》에 「《계급예술론의 신전개》를 읽고―김화산 씨에게」, 「상호비판과 이론확립―영웅주의자의 망론을 일축함」, 「무산문예가의 창작적 태도―현단계에 처하야」를 발표한다.
조중곤(趙重滾, 미상~미상): 1907년 충청남도 논산에서 출생하였다. 1926년 《조선일보》에 「노자영 군을 박함」을 발표한다. 1927년 《문예시대》에 「아이쓰ㆍ클림」을, 《조선문단》에 「산파역」을 발표한다. 동경 유학생 문예 단체인 제삼전선사의 문예순회강연에 연사로 참여한다. 《예술운동》에 「빼앗기고만 살가」를 발표한다.
김남천(金南天, 1911~1953): 1911년 평안남도 성천에서 태어났다. 1929년 일본 호세이대학 재학 중 카프에 가입하였다. 1931년 《조선일보》에 「공장신문」을 발표한다. 카프 1차 검거 때 기소되어 2년 실형을 받았다. 1935년 임화, 김기진과 카프 해산계를 제출한다. 1939년 《인문평론》 편집장을 맡고, 「대하」를 발표한다. 이후 단행본 《대하》를 간행한다. 1939~1940년 《조선일보》에 「사랑의 수족관」을 연재한다. 1940년 《사랑의 수족관》을 인문사에서 간행한다.
송영(宋影, 1903~1979):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유리공장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귀국한 후 염군사(焰群社)를 조직한다. 1925년 《개벽》 현상공모에 「느러가는 무리」가 뽑힌다. 1927년 「석공조합대표」, 「군중정류」를 발표한다.
[참고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2252, 접속일: 2025.9.20.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people.aks.ac.kr, 접속일: 2025.10.12.
윤기정, 「《계급예술론의 신전개》를 읽고―김화산 씨에게」, 《조선일보》, 1927.3.25.~30., 3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https://newslibrary.naver.com, 접속일: 2025.10.12.
윤기정, 「상호비판과 이론확립―영웅주의자의 망론을 일축함」, 《조선일보》, 1927.6.15.~19., 1927.6.20., 3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https://newslibrary.naver.com, 접속일: 2025.10.12.
윤기정, 「무산문예가의 창작적 태도―현단계에 처하야」, 《조선일보》, 1927.10.9., 1927.10.11.,~16., 1927.11.18.~1927.10.20., 3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https://newslibrary.naver.com, 접속일: 2025.10.12.
조중곤, 「노자영 군을 박함」, 《조선일보》, 1926.8.22.~26., 3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https://newslibrary.naver.com, 접속일: 2025.10.12.
「제삼전선사의 문예강연」,, 《조선일보》, 1927.6.13., 3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https://newslibrary.naver.com, 접속일: 2025.10.12.
「제삼전선사 하기순회강연」, 《동아일보》, 1927.6.14., 3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https://newslibrary.naver.com, 접속일: 2025.10.12.
김성수, 「발굴/해설: 카프 문학부 편 《캅프작가칠인집》 에 대하여」, 《민족문학사연구》 1, 민족문학사학회ㆍ민족문학사연구소, 1991, 303쪽.
김윤식, 《한국 현대문학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8.
이기영, 《고향》, 글누림, 2007.
한국근대문학관, 《단숨에 읽는 한국 근대문학사》, 한겨레출판, 2016.
[해제자]
이은선(경상국립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