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저자) 鄭芝溶 (발행처) 詩文學社 (발행연도) 1935년(昭和 10年)
초판.
[목차]
Ⅰ
바다1/바다2/毘盧峯/紅疫/悲劇/時計를죽임/아츰/바람/琉璃窓1/琉璃窓2/蘭草/촉불과손/海峽/다시海峽/地圖/歸路
Ⅱ
五月消息/이른봄아츰/鴨川/柘榴/發熱/鄕愁/甲板우/太極扇/카ᅋᅦ·ᅋᅳ란스/슲은印像畵/조약돌/피리/따알리아/紅椿/저녁해ㅅ살/뻣나무열매/엽서에쓴글/船醉/밤/슲은汽車/幌馬車/새빩안機關車/봄/湖水1/湖水2/湖面/겨울/달/絶頂/風浪夢1/風浪夢2/말1/말2/바다1/바다2/바다3/바다4/바다5/갈매기
Ⅲ
해바라기씨/지는해/띄/산넘어저쪽/홍시/무서운時計/三月삼질날/딸레/산소/종달새/병/아할버지[할아버지]/말/산에서온새/바람/별똥/汽車/故鄕/산엣색씨들녁사내/내맘에맞는이/무어래요/숨ㅅ기내기/비듥이
Ⅳ
不死鳥/나무/恩惠/별/臨終/갈릴리아바다/그의반/다른한울/또하나다른太陽
Ⅴ
밤/람프
朴龍喆, 「跋」
[내용]
총 5부로 나누어 최근 시(1929년 귀국 이후), 초기 시, 동요 및 민요풍 시, 신앙시 등 시 87편과 산문 2편을 수록하였다. 박용철이 시집의 구성과 배치, 장정을 맡았고, 발문도 썼다. 1935년까지 정지용이 쓴 시를 모은 첫 시집이다. 현대적인 감수성과 사유, 실험 정신으로 현대시를 정착시키고 한국어를 현대시의 미학적 언어로 성취하였다.
[자료의 특성 및 가치]
1935년 시문학사에서 초판 발행되었고, 1946년 건설출판사에서 재판 발행되었다. 국립한국문학관 소장본은 초판에 해당한다. 판권지에 “저작 겸 발행자 박용철”이라고 표기되어 있듯이 시집의 구성이나 작품의 선택 및 배치 등은 박용철이 주도하였다. 목차를 책 뒤쪽에 배치하였다. 재킷 표지[冊甲]에는 15세기 이탈리아 화가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가 그린 「수태고지(受胎告知)」의 천사 가브리엘 그림을 넣고 그 아래 ‘鄭芝溶詩集’이라고 하였다. 앞표지에는 ‘鄭芝溶詩集’이라고 금박으로 압인하고 가운데 ‘새’ 이미지를 눌러 찍었다.
박용철은 시문학파 정지용, 김영랑, 박용철의 시집을 시리즈로 출간하려는 기획 아래 우선 《鄭芝溶詩集(정지용시집)》(1935.10)과 《永郎詩集(영랑시집)》(1935.11)을 출간하였다. 박용철이 「발(跋)」에서 “새로운 시경(詩境)의 개척자”라고 정지용과 그의 시집을 규정한 바, 이 시집을 한국 현대시의 전범(典範)이자 정전으로 삼고자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김기림도 정지용을 “우리의 시 속에 현대의 호흡과 맥박을 불어넣은 최초의 시인이었다”고 평하였다. 윤동주를 비롯한 많은 문학 입문자들은 《정지용시집》을 통해 시를 공부하였다. 《정지용시집》이 한국현대시의 전범처럼 인식되자 임화(林和)는 기교주의적이라고 비판하며 프로시의 정통성을 주장하였다.
정지용이 식민지의 일본 유학생으로서 자신의 존재와 청춘을 의미화하고 심미화하는 양상을 《정지용시집》에서 살펴볼 수 있다. 조국을 상실한 상황에서 “나의 청춘(靑春)은 나의 조국(祖國)!”(「해협(海峽)」)이라는 시적 발화를 통해 청춘의 심미적 공화국을 ‘해협’이자 이 시집 자체 내에 세우고자 하였다. 《정지용시집》에는 ‘바다’를 제재나 배경, 또는 이미지나 비유로 삼는 시들이 유난히 많다.
[작가소개]
정지용(鄭芝溶, 1902~1950): 시인, 문학평론가, 번역가, 저술가, 언론인, 교육자. 필명 방지거[方濟各]. 충청북도 옥천 출생.
시문학파와 구인회 동인이다. 시 작품은 한국어 시 167편, 일본어 시 47편, 번역시 65편 총 279편 정도, 산문은 168편 정도로 확인되고 있다. 옥천공립보통학교, 휘문고등보통학교, 일본 교토[京都]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学]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정지용은 휘문고보 재학 시 홍사용, 박종화, 박팔양 등과 교류하며 「요람」 동인, 문우회 학예부장으로 《휘문》 창간호(1923.1)를 편집하는 한편, 소설을 쓰고 외국문학을 번역하였다. 《서광(曙光)》 창간호(1919.12)에 소설 「3인(三人)」을 발표하였다. 정지용은 일본 교토 도시샤대학 예과(1923)을 거쳐 영문학과(1926년)에 진학하고 윌리엄 브레이크(Blake, William)로 졸업논문을 썼다(1929).
정지용은 유학 시기 《도시샤대학예과학생회지(同志社大學豫科學生會誌)》, 《도시샤문학(同志社文學)》(도시샤대학 영문학과 문학회), 《가(街)》(도시샤대학 재학생 동인지), 《자유시인(自由詩人)》(《가(街)》 동인 참여 월간 시지), 《근대풍경(近代風景)》(기타하라 하쿠슈 주재) 등에 일본어 시를 50편 가까이 발표하며 현대시를 탐색하였다. 동시에 재경도조선인유학생학우회 기관지 《학조(學潮)》에 「카페 프랑스」, 「압천(鴨川)」 등을, 국내의 《조선지광(朝鮮之光)》, 《신민(新民)》 등에 시를 발표하며 한국어 현대시를 개척해 나갔다.
도시샤대학 졸업 후 귀국하여 휘문고보 영어 교사로 부임하고, 1930년 김영랑, 박용철, 이병기 등과 함께 《시문학(詩文學)》 동인으로 참가하였으며 1933년 《가톨릭청년》을 편집하며 이상(李箱)의 시를 발굴하였다. 그해 이태준, 김기림 등과 구인회를 결성하여 활동했다. 1935년 첫 시집 《정지용시집》을 출간했다. 블레이크(Blake, William)와 휘트먼(Whitman, Walt)의 시를 번역하여 《해외서정시집》에 수록하기도 했다. 1939년 창간된 문예지 《문장(文章)》의 시 부문 추천위원으로서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 김종한, 박남수, 이한직 등을 등단시켰다. 그는 시선후평 및 「시와 감상」, 「시의 언어」, 「시의 옹호」 등 평론을 통해 시학과 창작론을 개진하였다. 1930년대 수많은 시와 평론, 수필을 발표하였다. 1941년 국토와 자연의 발견이라 할 수 있는 시집 《백록담(白鹿潭)》을 출간했다.
해방 후 경향신문사 주간,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를 역임하는 한편,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회 시 부문 위원이자 아동문학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해방 이후 "새로운 운명에 해당할 새로운 민족시”(「조선시의 반성」)를 창출하기 위해 고투하였다. 이때 윤동주(尹東柱)를 발굴하였다. 전향 국면에서 고초를 당하다 6·25 한국전쟁 이후 행방불명이 되었다.
[참고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오영식ㆍ엄동섭, 《한국근현대시집 100년: 오뇌의 무도에서 입 속의 검은 잎까지》, 소명출판, 2021.
이경수 외, 《개관 20주년 기념 주요 소장자료 해제집》, 한국현대문학관, 2017.
최동호 엮음, 《정지용 전집》, 서정시학, 2015.
소래섭, 「《정지용시집(鄭芝溶詩集)》에 담긴 박용철의 의도와 구인회의 흔적」, 《어문연구》 46권 2호, 한국어문교육연구회, 2018, 263–291쪽.
이근화, 「정지용 연구의 범위와 가능성」, 《한국시학연구》 44호, 한국시학회, 2015, 279–291쪽.
정우택, 「현해탄의 청춘공화국—《정지용시집》(1935)을 중심으로」, 《민족문학사연구》 44호, 민족문학사학회·민족문학사연구소, 2010, 122–153쪽.
[해제자]
정우택(성균관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