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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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憧憬(동경)

  • 자료번호

    문5569
  • 저자명

    김광섭(金珖燮, 1905~1977) 저
  • 발행년도

    1938년
  • 크기(cm)

    세로19.9cm, 가로15.3cm
  • 개요

    1938년 대동인쇄소에서 초판 발행된 김광섭의 첫 시집이다. 1974년 광일문화사에서 재판 발행되었다. 국립한국문학관 소장본은 초판본이다. 등단작 「고독」을 포함하여 총 38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 키워드

    김광섭, 동경, 고독, 극예술연구회

소개

[기본정보]

(저자) 金珖燮 (발행처) 大東印刷所 (발행연도) 1938년(昭和 13年)

초판.

 

[목차]

李軒求, 「序詞」

 

孤獨/獨白/小谷에서/秋想/憧憬/送別/戀人/幻像/西天月/꼿지고 그늘지는날/黃昏/올뱀

 

個性/나의想隊/裸像/燭火/空寞/비개인여름아츰/傳說/珊瑚캐러가다/꿈/隨想

 

白紙/까치/밤/로-맨스/길/밀려난 조개껍데기/초가을/달밤

 

憂想/靑春/범/自畵像三七年/푸른하늘의顚落/苦悶의風土誌/怠慢의言語/谷

 

著者, 「跋」

 

[내용]

시집은 총 4부로 나누어 38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시집의 구성은 1부에 등단작 「고독」을 시작으로 3부까지 단형 서정시를 배치하고, 4부에 세 편의 장시 「고민의 풍토지」, 「태만의 언어」, 「곡(谷)」을 수록하였다. 시의 주요 경향은 1930년대 지식인들이 경험했던 현실 사회의 속박, 그에 따른 고독과 허무 의식,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을 노래하였다.

 

[자료의 특성 및 가치]

《동경》은 김광섭이 자가본(自家本)으로 발행한 첫 시집이며, 총 4부로 나누어 38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시원(詩苑)》 2호(1935.4)에 발표한 등단작 「고독」부터 《삼천리문학(三千里文學)》 1호(1938.1)에 실린 장시 「고민의 풍토지」까지 3년 동안 쓴 시들을 묶어서 출판하였다. 김광섭은 1929년부터 서구 문학 번역자와 극예술 비평가로 활발하게 활동하였는데, 이 시집을 통해 신진 시인으로서 새롭게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시집의 장정은 사륙배판의 고급 ‘미본(美本)’으로, 겉표지는 연한 청록색을 사용하였고 속표지에는 정현웅(鄭玄雄)이 펜으로 그린 김광섭의 초상화가 실려 있다. 본문의 앞부분에 이헌구의 「서사(序詞)」를 수록하였고, 셸리(P. B. Shelley)의 「종달새의 노래」에서 발췌한 6행의 영시 원문과 번역문을 수록하였다. 시집의 마지막에 시인 자신이 쓴 「발(跋)」을 실었다. 판권면에는 ‘초판천부(初版千部)’라고 밝혀서 초판본으로 1,000부를 발행한 사실을 알 수 있으며, 독특하고 아름다운 청색 그림의 인지(印紙)가 붙어 있다.

《동경》에 수록된 시의 주요 경향은 엘리트 지식인으로서 시인이 느끼는 이상과 현실 간의 모순, 현실 사회의 속박에서 오는 답답함과 허무감 등을 표현하였다. 이헌구는 「서사」에서 “이 시집은 이 땅의 30년대 인텔리의 지성의 비극을 추출한 우수(憂愁)의 기록”이라고 설명하였다. 실제로 김광섭은 서울의 중동학교(中東學校)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早稲田大学] 영문과를 졸업하여 당대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귀국 후에는 서구의 근현대 문학과 최신 문예사조를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하였고, 극예술연구회 소속으로 전국 각지에서 대중강연과 공연을 주최하면서 문예를 전파하는 활동을 하였다. 《동경》은 1930년대 엘리트 지식인으로서 시인이 경험하였던 현실 문제와 고민을, 당시 새로운 문예사조로 부상하던 모더니즘이 아니라 전통적이고 낭만적인 서정시의 정서와 언어로 표현한 점이 특징이다. 이 시집이 출간되었을 당시에 정인섭(鄭寅燮)은 “지성적 상징”이라고 호평하였고, 임화(林和)는 “지적 무력감에 대한 노래”라고 비판하여 상반된 평가를 보여주었다.

 

[작가소개]

김광섭(金珖燮, 1905~1977): 시인, 번역가. 호 이산(怡山). 1905년 함경북도 경성군(鏡城郡)의 어촌 출생.

마을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다가 경성공립보통학교(鏡城公立普通學校) 3학년에 편입하였다. 1920년 서울에 와서 중동학교(中東學校)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1926년 와세다대학[早稲田大学] 영문과에 입학하였다. 신입생 환영식에서 이헌구(당시 불문과 2년생)를 만났는데, 두 사람의 만남은 이후 극예술연구회 활동으로 이어졌다. 와세다대학 재학 시절에 조선인동창회 《R》지의 청탁으로 시 「모기장」(1927)을 발표하였다.

1933년 귀국하여 모교인 중동학교 영어교사로 부임하였다. 극예술연구회 연구부 소속으로 지방 강연과 공연에 활발하게 참여하였으며, 서구 근현대 문학을 번역ㆍ소개하고 문예 평론가로서 활동하였다. 1935년 4월 《시원(詩苑)》 2호에 시 「고독」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문단에 이름을 알렸으며, 1938년에 첫 시집 《동경》을 출판하였다. 한편, 1941년 2월 21일 새벽 갑자기 일경(日警)에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중동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아일랜드의 애국시를 강의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였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폐간 사건에 반대하는 발언을 한 것이 이유였다. 이후 서대문형무소에서 3년 8개월의 수감 생활을 보내고 1944년 9월에 출감하였다.

해방 후 김광섭은 시인이자 언론인, 행정가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민족진영 문인들을 모아서 중앙문화협회를 창립하고, 전조선문필가협회와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에서 활동하였으며, 민주일보사(民主日報社)와 민중일보사(民衆日報社)에서 일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공보 비서관에 취임하였다. 1949년에는 해방의 감격과 민족의식, 조국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두 번째 시집 《마음》을 출판하였다. 1951년 공보비서관직을 사임한 후 경희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한국자유문학자협회 위원장, 국제펜클럽 한국지부 부위원장, 세계일보사(世界日報社) 사장,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1957년 서울시문화상, 1969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1970년 국민훈장 모란장, 1974년 예술원상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 《동경》(1938), 《마음》(1949), 《해바라기》(1957), 보리스 파스테르나크(Boris Pasternak)의 번역시집 《서정시집》(1958), 《성북동 비둘기》(1969), 《반응》(1971)과 자전 문집 《나의 옥중기》(1976)가 있다.

 

[참고자료]

“김광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8701)

국립중앙도서관 근대문학정보센터, 《한국 근대문학 해제집 1: 단행본》, 국립중앙도서관, 2015.

근대문학 100년 연구총서 편찬위원회, 《근대문학 100년 연구총서》, 소명출판, 2008.

오영식ㆍ엄동섭, 《한국근현대시집 100년: 오뇌의 무도에서 입 속의 검은 잎까지》, 소명출판, 2021.

홍정선 편, 《이산 김광섭 시전집》, 문학과지성사, 2005.

임화, “무인(戊寅)이 걸어온 길 基 4 시단 2”, 《동아일보》, 1938.12.24., 3면

정인섭, “김광섭 시집 《동경》을 읽고 上”, 《동아일보》, 1938.7.17., 3면

 

[해제자]

정우택(성균관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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