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맨 위로 가기

근현대문학

product image

product image

product image

product image

product image

product image

product image

product image

product image

product image

product image

product image

product image

product image

夢見諸葛亮(몽견제갈량)

  • 자료번호

    문807
  • 저자명

    유원표(劉元杓, 1852~1929) 저
  • 발행년도

    1908
  • 크기(cm)

    세로22.0cm, 가로15.0cm
  • 개요

    국립한국문학관 소장 《몽견제갈량夢見諸葛亮》은 조선 말기의 역관이자 군인, 그리고 계몽지식인이었던 유원표劉元杓가 1906년 창작하여 1908년 간행한 몽유록이다. 밀아자蜜啞子가 꿈속에서 제갈량諸葛亮을 만나 제갈량의 업적을 근대적 관점에서 재평가하고, 당시 중국과 한국이 처한 국가적 위기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국립한국문학관 소장본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광학서포본과 동일본으로 추정된다.
  • 키워드

    유원표, 밀아자, 몽유록, 계몽지식인, 신채호

소개

[기본정보]

신연활자본

(저자) [劉元杓] (발행처) [廣學書舖] (발행연도) [1908년(隆熙 2년)]

155~158쪽 및 판권면 결락

쪽수: 서문(2쪽), 목록(1쪽), 본문(154쪽)

 

[목차]

一 議者謂爲非計

二 容或無怪十條

三 先生歷史演義

四 東土文學虛實

五 黃白關係眞狀

六 支那政略改良

 

[내용]

《몽견제갈량》은 밀아자가 꿈에서 제갈량을 만나 그의 업적을 재평가하는 내용이다. 밀아자는 제갈량의 정책과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근대적 관점에서 제갈량의 국가의식 및 실용정신 부족 등을 비판한다. 후반부에서는 황인종 단결과 동양적 근대 창출을 현실 극복 방안으로 제시한다.

 

[자료의 특성 및 가치]

국립한국문학관 소장 《몽견제갈량(夢見諸葛亮)》은 1908년에 간행된 1책의 신연활자본이다. 권수제는 ‘夢見諸葛亮’이다. 이종태(李鍾泰)가 제자(題字)를 썼고, 신채호(申采浩)가 서문을 썼다. 서문이 2쪽이고, 목록이 1쪽이며, 본문이 1~154쪽까지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광학서포본과 동일본으로 판단되며, 대조해 보면 국립한국문학관 소장본은 155쪽에서 158쪽 및 판권면이 결락된 것으로 보인다.

《몽견제갈량》은 밀아자가 1906년 어느 여름날 잠시 잠이 들었다가 제갈량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체 6장 중 1장에서 제갈량은 자신의 정책이 바르지 못했다는 당시의 평에 대해 불만을 품고, 밀아자에게 대해 제대로 평가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밀아자는 제갈량의 행적에 잘못된 점이 있다는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제갈량의 재주와 충성심을 칭송하면서 새롭게 평가할 부분이 있다고 응대한다. 2장에서 밀아자는 제갈량의 행적 가운데 비난받을 여지가 있는 열 가지를 1900년대의 가치인 ‘국가’와 ‘국권의 보전’이라는 관점에서 재평가한다. 3장에서 밀아자는 제갈량의 실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4장에서는 제갈량에게 국가의식, 계몽정신, 실용정신이 없었다고 비판한다. 5장과 6장에서 밀아자는 중국과 한국이 대면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방책으로 두 가지 안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바로 황인종이 단결하여 백인종의 침략에 맞서야 한다는 황인종 단결론과, 동양 문화의 전통을 개량하거나 재해석하여 동양적 근대를 창출하자는 것이다.

작품의 간행은 1908년에 이루어졌지만, 작품의 내용 및 말미에 있는 기록을 참고할 때 작품이 창작된 시기는 이보다 2년 앞선 1906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작가소개]

유원표(劉元杓, 1852~1929): 역관, 군인, 계몽지식인. 자는 선칠(善七), 호는 밀아자(蜜啞子).

조선시대 말기의 역관으로, 군인을 거쳐 근대 전환기에는 계몽지식인으로 활동했다. 29세인 1880년에 증광시(增廣試) 잡과(雜科) 한과(漢科)에 합격하여 직장(直長)과 한학관(漢學官)의 벼슬을 역임했다. 44세인 1895년부터는 군인의 직위를 받아 통역과 관련된 업무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근대 전환기인 1900년대부터는 신문과 잡지에 계몽과 관련한 시와 산문을 여러 편 게재하고 연설을 하였으며, 《몽견제갈량》이라는 정치소설을 발간했다. 이 시기 그는 훗날 무단통치를 실시하고 3·1운동이 일어나자 많은 사람을 학살했던 제2대 조선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1850~1924)를 칭송하는 시를 짓기도 했다. 1905년 을사조약에 항거하여 자결한 민영환(閔泳煥)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시와 산문을 남기기도 했으나, 일제의 인종주의적 아시아 연대의 논리에 포섭되어 친일적 경향을 보인다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물이다.

 

[참고자료]

배삼주, 「劉元杓의 《夢見諸葛亮》에 대한 연구」,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석사학위논문, 2000.

심재숙, 「《夢見諸葛亮》의 창작의도와 주제의식」, 《우리어문연구》 18호, 우리어문학회, 2002, 173-205쪽.

엄기영, 「《몽견제갈량(夢見諸葛亮)》의 작자 류원표(劉元杓)의 동아시아 정세 인식과 그 추이」, 《고전문학연구》 58호, 한국고전문학회, 2020, 7-41쪽.

이성혜, 「蜜啞子 劉元杓에 대한 傳記的 고찰」, 《동북아 문화연구》 제33집 1권,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12, 169-184쪽.

정환국, 「애국계몽기 한문소설(漢文小說)에 나타난 대외인식의 단상: 《몽견제갈량(夢見諸葛亮)》의 경우」, 《민족문학사연구》 23호, 민족문학사학회, 2003, 201-224쪽.

 

[해제자]

김동욱(한국학중앙연구원)

 

공공누리마크
제 4유형 : 출처 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