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맨 위로 가기

이슈! 한국문학

30자로 전하는 위로의 문학, 광화문 글판

  • 2025.11.26
  • 199
  • 국립한국문학관

교류협력부 구미화
 

 

최승자 시인의 <20년 후에, 지(芝)에게> 시구를 담은 2025년 가을 광화문 글판

 

서울의 대표적인 중심지 광화문 교보생명 건물에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 있습니다. 너비 약 8미터, 신문지 800배 크기에 달하는 거대한 글판입니다. 다른 입주회사 간판 없이 24층 건물에 홀로 자리해 더욱 눈에 띄는 글판에는 초등학생 키만 한 글자들이 오순도순 모여 있습니다. 그 글자들이 전하는 것은 다름 아닌 '시'입니다. 글판에는 윤동주, 김소월, 조병화 등 작고한 시인을 비롯해 현재 활동 중인 시인의 시가 계절마다 담깁니다. 서울 중심부에서 이렇게 시를, 문학을 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짧은 문장에 담긴 긴 여운, 글판에 담긴 30자
광화문 글판은 지난 1991년, 고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가 제안해 시작됐습니다. 초창기에는 '우리 모두 함께 뭉쳐 경제활력 다시 찾자', '개미처럼 모아라 여름은 길지 않다' 등 경제 성장과 부흥을 독려하는 격언이 주로 게재됐습니다. 그러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를 맞이하자 실직과 폐업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문장을 싣기 시작합니다.

 

초창기 광화문 글판 

 

광화문 글판에 담을 수 있는 글자는 30자에서 40자입니다. 글자 수에 제한이 있다 보니 지금까지 글판에 가장 많이 인용된 것은 '시'입니다. 짧고 간결하며 이해하기 쉬운 문장은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릴 때도, 운전을 하다 고개를 돌리는 짧은 순간에도 눈과 마음에 담겼습니다. 

 

광화문 글판이 세워진 지도 올해로 35년 째, 그동안 등장한 글판 수는 270개가 넘습니다. 계절마다 바뀌는 글판을 보며 사람들은 위로를 받고, 삶의 변화를 겪기도 했습니다. 교보생명에 따르면 지난 4월 7일부터 6월 1일까지 진행한 '내가 사랑한 광화문글판' 에피소드 공모에는 3,300건이 넘는 사연이 접수됐다고 합니다. 실직과 출산으로 힘겨울 때 광화문 글판을 보고 마냥 울었다는 사연,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그리운 마음을 글판에서 위로받았다는 사연, 아버지와 아기를 연이어 잃고 절망할 때 글판의 시가 삶을 붙잡아줬다는 사연 등입니다. 접수되지 않은 사연까지 포함하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이 글판을 보며 위로를 받았을까요.

 


삶을 바꾼 문장, 문학의 힘
올해 ‘시민이 뽑은 BEST 광화문 글판’은 22,000여 명의 투표 결과 나태주, 도종환, 문정희, 장석주 시인의 시가 선정됐습니다. 시상식에 참석한 문인들은 글판으로 시가 알려지며 삶이 달라지고, 시가 끼친 영향력을 몸소 체험했다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2004년 봄, 광화문 글판에 <흔들리며 피는 꽃>이 게재된 도종환 시인

 

[‘시민이 뽑은 BEST 광화문글판’ 수상 소감, 도종환 시인]
광화문 글판에 걸린 제 시를 보고 위안을 받았다고 연락을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취업이 되지 않아 힘든 때, 글판에 쓰여 있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시를 보고 많은 위안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일은 굉장히 아름다운 영향을 끼치는 일이었어요. 

 

2009년 겨울, 광화문 글판에 <겨울 사랑>이 게재된 문정희 시인

 

[‘시민이 뽑은 BEST 광화문글판’ 수상 소감, 문정희 시인]
눈에서 느껴지는 생명성, 이 주제는 제가 늘 시를 쓸 때 염두에 두었던 것 중 하나입니다. 머뭇거리고 주저하고 숨기고 망설이면서 놓쳐버린 생명의 소중한 기회들, 사랑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생애는 눈이 금방 녹아버리듯 짧을 수 있겠지만 어쩌면 천년 백설로 가장 고고하고 높은 산꼭대기에 남을 수도 있습니다.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그런 감정과 진정성으로 끝까지 펜을 놓지 않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4,50년 뒤에도 마음속에 간직할 인생의 문장
12월이 되면 광화문 글판에는 새로운 글이 등장합니다. 올겨울,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문장은 무엇일까요.

내년에도, 40년 후에도, 50년 후에도 마음속에 두고두고 간직할 인생의 한 문장이 변함없이 글판에 자리하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