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문학 대표작가 염상섭 자료, 국립한국문학관 기증
근대문학 대표작가 염상섭 자료, 국립한국문학관 기증
- 육필원고, 작품 발표 지면, 출판 계약서 등 유족이 보관하던 자료 280여 점
국립한국문학관(관장 문정희)이 염상섭 작가의 육필원고 등 자료 280여점을 유족으로부터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자료는 지난 3월 문학관에 입수되어 자료 정리와 수증심의위원회를 거쳐 8월 14일 기증이 확정되었다.
한국 사실주의의 완성자, 염상섭의 생생한 집필 현장
이번 기증 자료는 육필원고 및 구상메모 25점을 비롯하여 소설 등 작품이 발표된 지면을 작가가 직접 스크랩한 자료가 223점, 이력서, 출판계약서 등 작가 생활의 기록을 담은 자료가 30여점이다. 김억과 마해송이 염상섭에게 보낸 편지, 서예가 배길기가 쓴 묘비명, 언론인 유광열이 쓴 조서도 포함되어 있다.
주로 해방 후 염상섭이 직접 쓰고 갈무리한 자료들로, 한국 사실주의 문학을 완성한 염상섭 문학의 집필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 깊다. ‘작품구상 메모’, ‘육필원고’, ‘작품이 발표된 잡지와 신문의 스크랩’, ‘출판계약서’, ‘원고 교정본’에 이르는 자료 목록에는 구상부터 출판까지, 작품이 창작되고 대중에게 전달되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실주의의 대가답게 종잇조각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는 꼼꼼한 성격과, 해방 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소설을 놓지 않았던 집요한 작가정신을 자료를 통해 엿볼 수 있다.
한국 근대사의 격동을 살아 내며, 쉬지 않고 쓴 작가
염상섭은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되는 해에 태어났다. 국권이 상실된 이듬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고, 1919년 3.1운동을 유학중에 맞았다. 3.1운동의 여파로 창간된 동아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하며 ⌈폐허⌋ 동인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36년 일본 제국의 전쟁 압박이 심해지자 만주로 떠났다가 해방 후 서울로 귀환했다. 한국전쟁 때는 해군 장교로 종군하였으며 4.19 이후 1963년 지병으로 별세했다. 대한 제국과 일본제국, 광복 후의 대한민국을 모두 겪었고, 3.1운동의 ⌈만세전⌋, 일제 강점기의 조선 현실을 그린 ⌈삼대⌋, 해방 공간의 ⌈효풍⌋, 한국전쟁의 ⌈취우⌋까지, 그가 겪은 시대는 어김없이 소설에 담겼다. 국립한국문학관 초대 관장이기도 한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그의 작품은 식민지 시대와 분단 시대의 민족현실에 밀착된 불멸의 문학적 초상”이라고 평한 바 있다
파지(破紙)와 스크랩, 이력서와 출판계약서로 읽는 염상섭
국립한국문학관에 기증된 자료는 주로 광복 이후 시기의 것이다. 일제강점기 10년을 만주에서 살다가 귀환한 탓에 예전 자료는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스테이플러나 클립도 없었던 시대에 이면지에 붙인 잡지나 신문의 스크랩을 손수 꼬아 만든 지끈으로 꼼꼼히 묶었다. 스크랩에는 간행연월일과 발표 지면을 적어 두었고, 이미 활자화된 지면이라 할지라도 오자를 바로잡고, 펜으로 거듭 교정을 보기도 했다. 완결되지 못한 숱한 파지(破紙)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가 쓰는 일에 얼마나 집중했는지, 자신의 문장을 얼마나 무겁게 여겼는지를 알 수 있다.
국립한국문학관의 문정희 관장은 “우리가 알고 있는 문학의 이전(以前)이면서 이상(以上)”이라고 염상섭 자료를 설명하며 오랜 기간 소중히 자료를 보관하고 그것을 기증으로 나눈 유족의 뜻에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매끈하게 인쇄된 책의 표지로는 알 수 없는 문학의 이야기를 보존하고 발굴하고 알리는 일이야말로 문학관의 일”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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